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(2009, 해토)
-이영도, 듀나, 임태운, 송경아, 설인효, 노기욱, 김보영, 김몽, 김선우, 백상준
국내 SF 작가들의 단편작을 모은 앤솔러지.
실린 순으로 이영도의 '별뜨기에 관하여', 듀나 '죽은 자들에게 고하라', 임태운 '채널', 송경아 '하나를 위한 하루', 설인효 '진짜 죽음', 노기욱 '소울메이트', 김보영 '0과 1 사이', 김몽 '차이니스 와이너리', 김선우 '양치기와 달', 백상준 '우주복'로 총 10명의 작가가 쓴 10편의 단편을 담았다.
개인적으로 SF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.
세계관 자체가 새로운 판타지라면 좋아하지만...
특히 한국형 SF라면 끝장나게 싫어해요.
SF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서구적이고 미래적인 느낌 때문에
아무리 잘 만든 '한국형 SF'라고 홍보를 해도 그 문구 자체가 버터 때려넣은 청국장에 파란색 써클렌즈 낀 여중생을 보는 것 같아서...
이렇게 느끼는 건 저뿐만은 아닌 것 같아요.
그러니까 우리 나라 SF 장르가 기를 못 쓰는거겠지. 영화가 됐든 소설이 됐든......
그럼에도 이 책을 사게 된 것은, '이영도'님 때문에.
저는 어쩔 수 없는 영도님의 좀비.
'피마새' 이후로 나오지 않는 영도님의 소설을 기다리다 못해 단편으로라도 님의 소설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SF단편집을 주문했습니다.
이 책에 단편을 올린 작가는 영도님 빼고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.
듀나라면 영화평론을 읽은 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...... 음.
이 앤솔로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은 영도님의 '별뜨기에 관하여'입니다.
아흐하아하하하아하읗아흐앟 너무 좋아요.
영도님 소설에 관해서는 SF든 판타지든 그저 닥치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.
한국형 SF가 싫다고? 누가 그래? 영도님이 쓴 건 다 좋아요. 다 좋습니다. 정말 그래요.
아 나 진짜 이 소설에 대해서 할 말 많은데, 이 단편만 가지고 게시물 하나는 그냥 뚝딱 써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놔 영도님 진짜 천재.
인터넷에 보니까 어떤 분은 영도님의 SF는 한 번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고 하기도 하더라고요.
다른 SF에서 나오는 클리셰를 많이 갖다쓴다고...
하지만 SF 소설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(알았더라도) 영도님 소설에는 그저 찬성입니다.
영도님의 소설은 저에겐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에요.
듀나의 '죽은 자들에게 고하라'는 이 앤솔로지의 표제를 장식한 작품입니다.
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, 왜 이걸 표제로 한 거지? 같은......
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.
음, 뭐라고 해야하지. 나쁘진 않았는데 끝맺음이 조금 엉성했고, 왜 만들었는지 존재의 의문을 느낀 캐릭터가 있었고(인물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조연같은...), 전체적으로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운...
근데 왜 표제지? 제목이 파격적이라서 그런가? SF라기보다는 미스테리 스릴러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?
임태운의 '채널'
SF작품을 볼 때 기대하게 되는 참신한 설정 대신 뻔하고 겉멋 든 클리셰가 있고, 나름의 반전은 차라리 반전이 아닌 편이 나았을 것 같고, 감동을 주고자 한 것 같지만 결과는 참담할 정도의 시시함만 느끼고,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고.
심글이라도 매끄럽게 읽혔다면 좋았을텐데 젊어서 문장력의 중요성을 못 느낀건가 문장가도 못 되는군요.
이전 작품까지는 괜찮았다가(사실 듀나나 영도님께 비교하는 게 -어느 쪽이건-미안하긴 하지만)
이 작품에서 '내가 이래서 한국 SF가 싫었던 거야.'라고 되새기게 되었어요.
송경아의 '하나를 위한 하루'
'채널' 후의 작품이라 풀이 꺾여서 잘 안 읽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...
읽고나니 '그래서?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?'라는 생각밖엔......
설인효 '진짜 죽음'
지루합니다. 이건 내가 지쳐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글 자체가 눈에 안 들어와요.
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자가 아니라,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잉크임.
거기다 결말 맺는 방식하고는......
노기욱 '소울메이트'
전하고 싶은 주제도 뚜렷하고, 글도 잘 읽히는데('진짜 죽음' 다음이라 그런가.) 그냥 이야기 자체가 지리멸렬하네요.
엔딩이 예상가능한 점이나 읽으면서 생기는 설정상의 헛점과 의문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야기 푸는 과정 자체가 정교하지 못해요.
예측 가능한 엔딩을 위해 그냥 달려나가는 것 같은 느낌.
그래도 이 작품이 좋았다,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이 이해가 갈 것도 같고.
김보영 '0과 1 사이'
이 앤솔로지의 표제는 이 작품이 땄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.
내가 영도님의 좀비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최고라고 서슴없이 손꼽았을 거예요.
SF를 통한 현실 풍자라는 건 이런 거죠!
'한국'이라는 말과 'SF'라는 말이 이렇게 겉돌지 않고 기름 안 바르고 구운 김이 입천장에 붙듯이 이렇게 착 붙다니.
거기다가 섬세한 감정선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력과 담담하지만 부족함 없는 설정
SF라고 하면 미래나 과학에 대한 상상과 설정에만 치우쳐 소설 속 인물들의 심리변화와 표현의 중요성을 놓치기 쉬운데
절대 그러면 안 되는 거죠. 과학이 변화시키는 건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인간의 생활방식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철학인데.(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.)
그래서 이 작품이 정말 정말 정말 너무 좋았어요. 읽으면서 눈물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고...
이 글이 있고 이 작가를 알 수 있게 되어서 이 앤솔러지를 사기 위해 치른 값이 아깝지 않아요.
이렇게 서정적이고 마음에 와닿는 글이라니.
[나는 아이들에게 너희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야.
그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너희 나이 때엔 다 그런 거라는 말도,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도 하지 않겠어.
내게 그 말을 '하지 않는' 어른이 아무도 없다면, 그럴 수 있는 어른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면,
내가 나이를 먹고 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어.
그 말에 담긴 무심함과 비겁함을, 어리석음을 아는 어른이 되겠어.
-김보영 '0과 1 사이' 중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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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 댓글
▦naki
2010-03-01 00:31:20